경제·부동산

모리슨 "우발적 총리"인가 "모사꾼"인가

호주온라인뉴스 0 12115

헤럴드, 선거 앞두고 모리슨 총리 위선행각 폭로
작년 당권파동 때 "반대파에 지지파 5명 위장편입"
'독실한 기독인'으로 알려진 그의 기도회 그룹이 주도  

 
작년 8월 집권 자유당의 말콤 턴불 당시 총리에 대한 보수파 피터 더튼 내무장관의 도전으로 시작된 당권파동에서 3차례에 걸친 표결 끝에 제3자인 스콧 모리슨 당시 재경장관이 제30대 총리가 된 경위가 처음 폭로되면서 호주 정가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폭로는 그동안 해명되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당권파동의 비밀을 파헤친 동시에 당시 정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발적 총리"가 된 것처럼 포장해온 모리슨 총리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기는 것이어서 5월 연방총선을 앞둔 집권 여당에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26일 "그는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스콧 모리슨이 어떻게 총리(턴불)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나"란 제목의 피터 하처 정치부장 기사를 통해 모리슨의 위선행각을 들춰냈다.


턴불 기반 흔들면서 겉으론 충성 다짐

 

헤럴드 기사는 작년 8월21일 1차 당권표결에서 턴불이 더튼의 도전을 물리친 후 다음날, 즉 운명의 2차 당권표결이 벌어지기 이틀 전인 8월22일 턴불-모리슨 공동 기자회견 장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당시 한 기자가 모리슨에게 총리 자리에 야심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턴불 총리의 어깨에 팔을 걸치는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이분이 나의 리더이며 나는 그에 대한 포부가 있다"고 쾌활하게 선언했다.

 

헤럴드는 모리슨이 턴불 팀의 충성스런 일원으로 일단 그의 상관인 총리가 그에게 당권경쟁에 나서도록 축복을 해준 다음에야 그렇게 뛰어들었던 "우발적 총리"라는 인상을 심으려 애써 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늘날 자유당 내에는 "그가 당시 이미 조용히 당권도전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이야기들이 돌고 있다고 헤럴드는 지적했다.


은밀히 러닝메이트 타진하며 야심 드러내

 

기자회견에서 충성을 공언하기 이틀 전, 그러니까 당시 무르익던 더튼의 당권도전설이 현실화되기 하루 전 그는 그렉 헌트 보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턴불 지지세력 규합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의 러닝메이트(부당수)로 당권경쟁에 나설 가능성에 관심이 있는지 미묘하게 타진했었다고 헌트가 당시 동료들에게 밝혔다는 것.

 

모리슨은 이러한 이야기를 거짓으로 일축하고 있으나 바로 그 같은 날 더튼 진영의 특사가 모리슨에게 접근, 더튼의 러닝메이트로 나설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왔으며 모리슨은 이를 일거에 거절했다.

 

이 특사는 나중에 동료들에게 모리슨 당시 재경장관이 자신은 (더튼 내무장관의 업무 중 일부인) 이민장관을 역임하고 재경장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튼보다 더 총리 자격이 있다며 "이민장관이 총리가 되는 것은 너무 큰 도약이며 재경장관이 총리가 되는 것은 훨씬 작은 도약"이라고 말한 것으로 헤럴드는 전했다.

 

모리슨은 이 이후 이런 대화를 가진 것에 대해 그날은 많은 대화를 나눈 밤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당권파동 당시 3차례 표결의 숫자 게임들 

 

중도파인 턴불의 기후변화와 에너지정책에 대한 보수파의 반발이 계기가 되었던 당권파동은 8월21일 턴불이 선제적으로 당권경쟁을 위한 의원총회를 소집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날 당권경선에 더튼이 도전하면서 1차표결 끝에 턴불이 재적의원 85명 중 48-35의 13표차로 더튼을 물리쳤다.    


그러나 40% 이상의 지지를 얻은 보수파는 재도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세력규합에 나서 22일밤부터 2차 당권표결을 위한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턴불은 더튼 측으로부터 재적 과반수 의원의 의원총회 소집 청원서가 접수되면 24일 의원총회를 소집하고 자신을 상대로 당권도전이 제기되면 이를 불신임투표로 간주, 총리직에서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규합에 나선 더튼 진영은 결국 재적과반수 최저한도인 43명의 서명을 받는 데 성공, 당권경선을 위한 의총소집 요구서를 제출했다. 더튼 진영이 35명에서 43명으로 8명 늘어난 셈이었다.

 

이어 의총에서 당권경선을 위한 지도부 해산 동의안이 표결에 부쳐져 45-40으로 통과되면서 결국 턴불이 퇴진하고 2차 당권표결이 이뤄지게 됐다. 줄리 비숍 부당수까지 가세한 3파전이 모리슨-더튼 간 결선으로 좁혀진 끝에 45-40의 같은 표차로 모리슨에게 당권이 돌아갔다.


반대파에 5명 위장편입시켜 턴불에 타격

 

어떻게 이런 숫자게임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호주언론과 정치평론가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 왔음에도 지난 7개월 동안 모리슨 측에서 이렇다할 해명도 나오지 않은 채 묻혀 가고 있었다.

 

하처 부장은 모리슨이 참여하지 않았던 1차 당권표결 때 그의 계수원들(numbers men. 자파 지지의원들의 숫자를 세는 사람)이 모리슨 지지의원 5명에게 더튼을 지지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는 더튼을 당수로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턴불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더튼 진영에 "일시 주차(위장편입)시키는" 책략이었다. 그리고는 턴불의 위상이 무력해지자 모리슨이 당권경쟁에 뛰어들 길이 열리게 되면서 이들 5명을 모리슨 진영으로 돌아오게 하는 그런 책략이 주효했던 것이다.

 

모리슨 자신은 턴불총리에 대한 지지를 다짐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그의 조직가들은 턴불의 당권에 최대한 손상을 입히기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고 헤럴드는 보도했다.


'모리슨파 위장편입'에 충격받은 턴불파 론디

 

모리슨의 내부 핵심층은 이러한 책략을 누설하지 않기로 모두가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모리슨의 사람들이 턴불의 심복이며 주요 계수원인 크레이그 론디 당시 노사관계장관에게 이를 분명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턴불이 일단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론디 장관이 모리슨 지지자들을 만나 상황을 논의하기로 했다. 턴불 진영과 모리슨 진영은 더튼을 봉쇄하는 데는 한마음이었다.

 

론디 장관은 2차표결 전날인 8월23일 오후 모리슨의 핵심 조직가 중 하나인 알렉스 호크 의원 사무실에서 모리슨측 핵심그룹 5명과 만나 양측의 숫자들을 비교했다. 이들 5명은 매주 화요일밤 만나는 기도회 그룹이었다. 이들이 서로 양측 의원들이 누구 뒤에 줄을 서고 있는지를 적어 내려가고 있을 때 '5명의 위장편입' 책략이 드러난 것이다.

 

론디는 충격을 받은 상태로 총리실로 달려와 소식을 전하면서 총리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중거래의 수법이 턴불을 무너뜨릴까 염려해서였다. 하지만 총리실 직원들은 턴불에게 이를 알렸다.


"모사꾼 세계에서 인정받는 모사꾼" 

 

하처 부장은 "모리슨이 그의 계수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턴불측 지지자들과 직원들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턴불은 그 이전부터 연립정부 파트너인 국민당의 바나비 조이스 당시 당수로부터 "모리슨은 모사꾼이니 조심하라. 그가 덤벼들 것이다"라는 경고를 받았던 터였다.

 

헤럴드는 "모사꾼들의 전문직에서 모사꾼으로 지목받는 것은 전문가적 칭찬"이라며 자유국민당 연합 내에서의 모리슨의 평판이 그러했으며 이는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더튼의 개인적 야심은 당지도부를 혼란에 빠뜨렸지만 모리슨의 개인적 야심은 그를 혼란 속에서 승리자로 부상케 했다.


더튼은 자신의 야심을 터놓고 말했지만 모리슨은 총리직 승진을 위한 공작을 벌이면서도 이에 대한 무관심을 가장하면서 자신의 야심을 숨겨왔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이는 모리슨의 고위 동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익히 알려져온 일이었다. 토니 애봇 전총리에 따르면 모리슨은 2015년 초 당시 조 하키 재경장관이 '불공정한 연방예산' 문제로 압박을 받고 있을 때 당시 이민장관이던 그가 애봇을 찾아와 자신을 재경장관으로 임명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봇은 모리슨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그때부터 모리슨이 "턴불과 공모하여" 자신을 축출할 마음을 먹은 것이 그에겐 분명했다고 동료들에게 말해 왔다. 결국 모리슨은 2015년 10월 애봇을 축출한 턴불 정부에서 재경장관으로 승진됐다.


"브리징비자 난민신청자 3만명 가두겠다"

한편 지난 2014년초 애봇 정부가 첫 예산을 준비하고 있을 때 당시 신임 이민장관이었던 모리슨은 당시 영주비자 신청결과를 기다리며 커뮤니티에서 브리징비자로 거주하고 있던 약 3만명의 난민신청자를 대량 수용하기 위해 4년간 90억~100억불의 예산을 요청했던 것으로 복수의 전.현직 장관들과 관리들이 전했다.

 

하키 당시 재경장관은 이 요청에 "크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그의 주된 반대 이유는 예산문제 때문이 아니라 인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정부가 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아 대량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모리슨 현 총리의 대변인은 총리가 그런 제안을 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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