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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호주코리아포스트 &amp;gt; 전문가칼럼 &amp;gt; 신앙 칼럼</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link>
<description>호주코리아포스트 &amp;gt; 전문가칼럼 &amp;gt; 신앙 칼럼</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다시 사랑할까요?</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606</link>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61098208638.jpg" src="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61098208638.jpg" alt="17761098208638.jpg" class="img-tag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죽음도 건너오신 이와 사랑하세요 </p>
<p style="text-align:justify;">행여 당신이 무덤 앞에 서더라도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분은 이미 그곳을 지나오셨으니까요</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눈물을 아는 이와 사랑하세요 </p>
<p style="text-align:justify;">‘마리아야’ 한 마디로 </p>
<p style="text-align:justify;">어둠을 걷어 내시는 분이니까요</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끝까지 기다리는 이와 사랑하세요 </p>
<p style="text-align:justify;">사흘이 지나도록 포기하지 않으시고 </p>
<p style="text-align:justify;">첫 새벽빛에 다시 오시는 분이니까요</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온 맘을 다 주는 이와 사랑하세요 </p>
<p style="text-align:justify;">죽음보다 강하게, 무덤보다 넓게 </p>
<p style="text-align:justify;">당신을 사랑하시는 분이니까요</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p>
<p style="text-align:justify;">죽음을 이기신 그날, </p>
<p style="text-align:justify;">만남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시는 주께서 </p>
<p style="text-align:justify;">당신을 완전히 새로운 미래로 초청하십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부활절은 그래서, </p>
<p style="text-align:justify;">주님의 날이고, </p>
<p style="text-align:justify;">우리의 날이며, </p>
<p style="text-align:justify;">당신의 날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제, 우리 다시 사랑합시다! </p>
<p style="text-align:justify;">주님처럼, </p>
<p style="text-align:justify;">마치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았던 것처럼...</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골드코스트한인교회협의회〉</b></p>
<p style="text-align:justify;"><br /></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Tue, 14 Apr 2026 05:50:02 +1000</dc:date>
	</item>
	<item>
	<title>다시 뜨거워질까요?</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605</link>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57354222805.jpg" src="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57354222805.jpg" alt="17757354222805.jpg" class="img-tag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살다 보면</p>
<p style="text-align:justify;">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p>
<p style="text-align:justify;">길을 걸어야 하는 날이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마음 한쪽이 무너져 있는데도</p>
<p style="text-align:justify;">밥을 먹고,</p>
<p style="text-align:justify;">사람을 만나고,</p>
<p style="text-align:justify;">집으로 돌아가고,</p>
<p style="text-align:justify;">해야 할 말을 하며</p>
<p style="text-align:justify;">보내야 하는 날…</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이미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지만,</p>
<p style="text-align:justify;">내 일상과는 아직 상관없는 이야기…</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걷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낙심한 채로,</p>
<p style="text-align:justify;">해답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어느새 누군가 곁에 와</p>
<p style="text-align:justify;">말을 걸고,</p>
<p style="text-align:justify;">들어 주고,</p>
<p style="text-align:justify;">조용히 풀어 주고,</p>
<p style="text-align:justify;">마침내 한 식탁 앞에 앉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리고 그제야 알게 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삶을 바꾸는 순간은</p>
<p style="text-align:justify;">늘 거대한 번개처럼만 오는 것이 아니라,</p>
<p style="text-align:justify;">곁에 와 주시는 한 분,</p>
<p style="text-align:justify;">늦게야 열린 눈,</p>
<p style="text-align:justify;">지극히 평범한 식사 자리에서</p>
<p style="text-align:justify;">조용히 스며들기도 한다는 것을.</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어느 날 문득,</p>
<p style="text-align:justify;">다시 깨닫습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날 길 위에서</p>
<p style="text-align:justify;">내 마음이 </p>
<p style="text-align:justify;">다시 뜨거워지고 있었다고.</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b>&lt;엠마오로 가는 사람들의 회고&gt;</b></p>
<p style="text-align:justify;"><b> </b></p>
<p style="text-align:justify;"><b>골드코스트 한인교회 연합회</b></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Thu, 09 Apr 2026 21:50:02 +1000</dc:date>
	</item>
	<item>
	<title>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604</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내가 가장 미워하던 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것에 평생을 헌신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삶을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울이었던 바울입니다. 예수신앙은 단순히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으로 출발하지만, 반드시 삶을 통해 완성되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바로 이 진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처음의 바울, 곧 사울은 유대의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철저했고, 누구보다 유대신앙에 진심이었습니다. 그 열심과 진심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반드시 제거해야 할 위험한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핍박하고, 옥에 넘기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사울의 문제는 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칠 만큼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진리 위에 서 있지 않았고,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믿으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대적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확신은 때로 무지보다 더 위험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의 인생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완전히 뒤바뀝니다. 하늘로부터 비추는 빛 가운데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났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예수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순간, 그의 모든 신앙체계는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고백은 “주여 누구시니이까”였습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예수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신앙의 시작이었다. 이 만남 이후, 사울은 바울로 변화되었고, 이 변화는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예수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깊어졌다. 부활의 신비를 알기 위하여 평생을 예수님을 알고자 하였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빌립보서3:10-11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먼저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자 그로 인한 불편함과 고난을 피하지 않았습니다.</b> 바울은 예수를 단순히 교리나 지식으로 아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삶 속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예수의 삶에 실제로 참여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넘기는 가운데 그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고린도후서11:23-27) 예수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고난의 자리에서 실제로 함께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고린도후서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난이 깊어질수록 그는 더 깊은 위로를 경험했고,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과 배경을 의지하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오직 주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고난은 그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더 깊이 알게 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더 이상 ‘설명되는 분’이 아니라 ‘경험되는 분’이 되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두 번째로 예수님을 알고 그의 흔적을 몸에 새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b> 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갈라디아서6:17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이 고백은 단순한 고생의 표현이 아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예수의 증거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의 몸에는 실제로 고난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외적으로는 매 맞은 자국과 상처들은 그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었습니다. 당시 ‘흔적’이라는 말은 종이나 군인이 주인에게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였습니다. 교회를 파괴하던 사람이 교회를 세우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자기 의를 자랑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결국 예수의 흔적은 단순히 “얼마나 고난을 겪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를 말합니다. 바울의 삶은 그 자체로 예수를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세 번째로 예수님을 알고자 바울은 날마다 자신을 죽였습니다. 바울의 신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은 고백으로 나아갑니다.</b> 고린도전서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말은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기 욕심, 자기 계획, 자기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삶. 그것이 바울이 말한 ‘날마다 죽는 삶’입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의 시간과 열정, 인생의 방향은 오직 주님을 위해 드려졌습니다. 이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어야 했습니다. 편한 길보다 순종을, 이익보다 진리를, 자기보호보다 헌신을 선택했고, 그 선택들이 쌓여 그의 삶은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날마다 안에 있는 육신의 사람과 싸우는 과정이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부활절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사울이었던 바울의 삶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b> 평생 주님을 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사울은 한때 예수를 적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순한 감정이나 결단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여 경험했고, 삶에 예수의 흔적을 새기며 정체성을 확립했으며, 결국 날마다 자신을 내려놓기 위하여 육신을 죽이기 위하여 싸우는 자리까지 나아갔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그는 점점 더 깊이 예수를 알아갔다. 신앙은 단순한 열심히 아니라 삶의 변화입니다. 아멘.</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골드코스트 장로교회 </p>
<p style="text-align:justify;">곽석근목사 0409 995 456</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Thu, 02 Apr 2026 09:50:01 +1100</dc:date>
	</item>
	<item>
	<title>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습니다</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603</link>
	<description><![CDATA[<p>
   </p><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이스라엘의 오래된 역사 속에는 한 영웅의 이야기가 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는
소년 다윗입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의 아버지는 이새이며<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힘이나 경험 면에서 형들보다 약해 보였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주로
양을 치는 목동 역할을 맡았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의 인생의 전환점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가 있던 형들을
만나러 갈 때였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곳에서 이스라엘 군인들도<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사울
왕도 두려워하던 적장 골리앗을 만났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가 하나님을 조롱하며 각 진영의 대표끼리 싸우자고 제안할 때
다윗이 자청하여 나서게 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처음에는 모두가 말렸으나 결국 이 대결에서 다윗은 갑옷도 입지 않고
물매와 돌멩이만 들고 싸워 골리앗을 이기게 되었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국민적인 영웅이 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결과적으로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고 한때 왕궁에서 사랑받던 사람이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이후 전쟁터에서는 승리의 영웅으로 불렸고 백성들은 그의 이름을 노래로 부르며 기뻐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b>아둘람 동굴의 시작<span lang="en-us" xml:lang="en-us"></span></b></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그러나 인생은 어느 날 예고 없이 방향을 바꾸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왕이었던 사울의
질투와 두려움이 그를 향한 칼날이 되었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다윗은 하루아침에 가족과 왕궁의 영광을 뒤로한 채 도망자의
길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사울은 다윗을 돕는 사람들이 있으면 놉의 제사장 일가처럼 몰살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결국 다윗은 아무도 없는 곳<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유다 산지의 한 어두운 바위굴인 아둘람
동굴로 숨어들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빛이 잘 스며들지 않는 그 동굴은 희망보다 두려움이 먼저 밀려오는 공간이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미래는 보이지 않았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러나
다윗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b>사람들은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동굴로 모였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b></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그런데 혼자 있는 그 동굴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사무엘상<span lang="en-us" xml:lang="en-us"> 22</span>장<span lang="en-us" xml:lang="en-us"> 2</span>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span lang="en-us" xml:lang="en-us">.</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span lang="en-us" xml:lang="en-us"></span>이것을 쉽게 풀어 말하면<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경제적 압박 속에 미래를 포기하려던 사람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억울함과 상처로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동굴로 모여들었다는 것입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그들은 실패자들의 모임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공동체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그들이 동굴로 온 이유는 단지 숨기 위함만은 아니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들은
한 사람을 바라보고 왔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 한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다윗은
도망자였지만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니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는 환경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었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결국 그 동굴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오늘 우리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누군가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b>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예배의 자리를 지켰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b></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어둠 속에서도 다윗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는 절망보다 하나님을
먼저 선택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시편<span lang="en-us" xml:lang="en-us"> 142</span>편<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다윗이 굴에서 고백한 글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span lang="en-us" xml:lang="en-us"></span>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점차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예배 공동체로 변화되어 갔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두려움의 탄식은 기도의 고백으로<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침묵의 절망은 찬양의 울림으로 바뀌어
갔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다윗이 아둘람 동굴에서 지은 다른 시편에서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span lang="en-us" xml:lang="en-us">(</span>시편<span lang="en-us" xml:lang="en-us"> 57:7) </span>회복은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지켜지는
예배의 자리로부터 시작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오늘 우리들은 이 시대에 나의 예배의 자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b>결국 아둘람 동굴은 마지막 자리라고 생각했으나 새로 시작하는 자리였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b></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시간이 흐르자 아둘람 동굴 공동체에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끝이라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마지막이라고 모였던 굴이 새롭게 시작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span lang="en-us" xml:lang="en-us">.</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span lang="en-us" xml:lang="en-us">(</span>역대상<span lang="en-us" xml:lang="en-us"> 12:22) </span>낙심한 사람들의 동굴 모임이 훗날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군대 공동체로 변화된 것입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동굴은 패배의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사명의 출발선이었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하나님은
광야에서 한 사람을 준비시키시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들을 통하여 큰 군대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결국 아둘람 동굴은 어둠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미래가 태동한 자리로 기억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b>오늘 우리의 삶 속에 있는 </b><b><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아둘람</b><b><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span lang="en-us" xml:lang="en-us"></span></b></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우리의 삶에도 아둘람 동굴 같은 시간이 찾아옵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숨고 싶어지는 순간<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기도해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그 시간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 시간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하나님의 조용한 손길이 머무는 시간입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동굴처럼 느껴질지라도<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곳이 찬양과
기도와 예배의 자리가 되는 순간 절망의 공간이 아니라 소망이 시작되는 장소가 됩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우리의 막다른
골목을 은혜의 출발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아멘<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골드코스트 장로교회 </p>
<p style="text-align:justify;">곽석근목사 0409 995 456</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Thu, 19 Mar 2026 00:50:02 +1100</dc:date>
	</item>
	<item>
	<title>나의 일에 유익하니라</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602</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디모데후서4:11)</span></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의 모습과 가장 닮은 사람을 찾는다면 마가요한을 떠올릴 수 있다. 그는 위대한 사도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강한 믿음을 가진 인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연약함과 실패를 경험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귀하게 사용하셨다. 마가요한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지,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마가요한은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청년이었다. 사도행전 12장에는 베드로가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난 후 한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곳은 바로 마가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 그 집에는 많은 성도들이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마가요한의 집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던 장소였으며 그의 가정은 매우 헌신적인 신앙의 가정이었다는 점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란 마가요한은 자연스럽게 교회 공동체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어린 시절부터 신앙의 지도자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오늘날로 말하면 모태신앙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교회와 신앙 속에서 자라난 것이다. 그러나 모태신앙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특별한 회심의 경험 없이 자연스럽게 믿음이 이어지다 보면 신앙이 습관처럼 느껴질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위기 앞에서 믿음이 흔들리기도 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마가요한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사도들의 선교 사역에 동참했던 젊은 조력자였다. 사도행전에는 바나바와 사울이 구제 사역을 마치고 돌아갈 때 마가요한을 데리고 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선교 여행에서도 그는 수행원으로 함께하며 사도들의 사역을 도왔다. 젊은 나이에 복음 전파의 현장에 참여한 것이다.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졌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러나 그 기회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선교 여행 중 그는 밤빌리아에서 선교팀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 성경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교의 어려움과 두려움, 그리고 젊은 나이의 미숙함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낯선 환경과 위험 속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문제는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포기가 아니라 공동체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훗날 바울과 바나바가 두 번째 선교 여행을 준비할 때 바나바는 다시 마가요한을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강하게 반대했다. 이전에 사명을 포기하고 떠난 사람을 다시 데리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크게 다투었고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 사건은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 두 사람이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중심에는 마가요한의 과거 행동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과 동역자들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이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큰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다시 찾아오셨고 그를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흥미롭게도 마가요한은 훗날 베드로와 가까이 지내며 그의 설교를 기록하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마가복음이 되었다고 전해진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마가요한이 다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며, 회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첫째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 때문이다. </b></p>
<p style="text-align:justify;">그는 어릴 때부터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의 집에는 늘 기도하는 성도들이 모여 있었다. 부모의 기도, 교회의 사랑, 믿음의 어른들의 관심이 그의 삶 속에 쌓여 있었다. 그는 어쩌면 그 사실을 당장은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그의 인생 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자주 발견한다.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의 삶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이 하나님을 떠나 방탕하게 살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 기도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하고 돌아왔고, 이후 교회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마가요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도에 빚진 사람이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둘째는 하나님께 드린 상처 때문이었다. </b></p>
<p style="text-align:justify;">그는 선교 사역을 중도에 포기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은 그의 마음 속에 깊은 부담과 빚처럼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를 다시 사용하셨다.사도 바울 역시 과거에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감옥에 가두는 일을 했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자리에도 있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그는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완전히 변화되었다. 이후 그는 평생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그렇다, 마가요한의 상처는 은혜가 되었다. 그 은혜는 마가요한을 다시 세우는 동력이 된 것이다.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셋째는 하나님과 동역자들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b></p>
<p style="text-align:justify;">시간이 흐른 후 바울은 마가요한을 다시 인정하기 시작했다. 디모데후서에는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에는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했던 사람이 이제는 사역에 꼭 필요한 동역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시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마가요한은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세우셨다. 그리고 그는 훗날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우리의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 우리가 믿음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우리의 힘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며 또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준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부모의 기도, 교회의 사랑, 믿음의 공동체의 도움이 우리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신앙의 공동체에게 받은 기도의 빚, 그리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의 빚, 곧 십자가이다.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마가요한의 삶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 준다.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은 넘어졌던 사람도 다시 사용하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공동체의 사랑은 우리의 약함을 채우고도 남는다는 사실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주님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말씀하신다. 아무개를 데려오라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아멘.</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골드코스트 장로교회 </p>
<p style="text-align:justify;">곽석근목사 0409 995 456</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Thu, 12 Mar 2026 11:00:02 +1100</dc:date>
	</item>
	<item>
	<title>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강합니다 (로마서 8:31–39)</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601</link>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19878212723.jpg" src="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19878212723.jpg" alt="17719878212723.jpg" class="img-tag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어린아이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엄마가 곁에 없으면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를 찾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엄마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곁에 있을 때 아이는 불안하지 않고 깊은 안정감을 누립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저는 한때 약 6개월 동안 고아원에서 아이들의 예배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불안이 서려 있었습니다. 특히 고아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일수록 더 그랬습니다. 얼마 전 부모가 헤어졌거나,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은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깊이 슬프게 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영향을 준 하이데거 역시 인간을 ‘내던져진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드넓은 세상, 끝없는 우주 속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인간의 두려움을 말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모습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반대로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을 선포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35절)</p>
<p style="text-align:justify;">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결코 고독한 존재가 아니며, 궁극적으로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우주에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존재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렇다면 왜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을까요?</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는 계산법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3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p>
<p style="text-align:justify;">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전혀 ‘가성비’가 맞지 않는 선택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유일하신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것은 인간의 계산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오직 희생적 사랑,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둘째, 십자가에서 ‘위대한 교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이 복음을 “위대한 교환(The Great Exchange)”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것은 죄와 죽음과 지옥의 저주, 누더기 옷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것은 의와 생명과 구원, 눈부신 예복과 같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 둘이 서로 바뀌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사람은 자신이 큰 희생을 치른 것을 더욱 소중히 여깁니다. 어머니가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출산의 고통을 견딘 후 아기를 안았을 때, 그 생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또한 잠을 줄이고 고난을 견디며 사업의 성과를 이룬 사람은 그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자신의 땀과 눈물, 희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가장 값비싼 대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희생을 치르셨는데, 우리를 쉽게 놓아버리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덕스럽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철회되지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반복해서 선언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위대하고, 가장 탁월하며, 그 무엇보다 강한 사랑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시다.</p>
<p style="text-align:justify;">“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로마서 8:35)</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골드코스트 사랑의교회</p>
<p style="text-align:justify;">고광덕 목사</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Wed, 25 Feb 2026 13:50:02 +1100</dc:date>
	</item>
	<item>
	<title>떨어질 낙(落) , 마음 심(心) (민수기 13:25–33)</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600</link>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13074205212.jpg" src="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13074205212.jpg" alt="17713074205212.jpg" class="img-tag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일 보고서를 작성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분은 일기를 쓰고, 어떤 분은 하루를 정리하며 마음속에 생각의 메모를 남깁니다. 그 모든 기록은 사건마다 긍정과 부정의 보고서로 마음에 저장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로 저장해서는 안 되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바로 ‘낙심’의 보고서입니다. 낙심의 끝은 매우 비참하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 아래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합니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12명을 택해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게 합니다. 그들은 돌아와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며 과일도 매우 크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나 곧이어 “그 땅은 사람을 삼키는 땅이며,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와 같다”(13:32–33)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풍요를 보았지만, 낙심이 깊어지자 두려움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 부정적인 보고는 온 백성에게 퍼졌고, 14장 1절에 보면 백성은 밤새 통곡합니다. 고생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강한 족속이 앞에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낙심하게 만든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1. 낙심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아집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낙심을 낳고, 낙심은 더 큰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처음에는 “좋은 땅”이었는데, 나중에는 “사람을 삼키는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백성들은 “차라리 이집트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말이었습니다. 낙심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만듭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2. 낙심하면 하나님이 안 보이고 문제만 보입니다. 낙심하면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문제만 크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나 자신만 보입니다. ‘낙심(落心)’은 마음이 아래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마치 권투 선수가 지쳐서 가드를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가드가 내려가면 가장 약한 턱이 무방비가 되고, 결국 상대의 공격에 쓰러지고 맙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3. 낙심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모두가 낙심에 빠졌을 때 두 사람은 달랐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입니다. 갈렙은 “올라갑시다. 우리는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13:30)라고 말했고, 여호수아는 옷을 찢으며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땅을 주실 것입니다”(14:6)라고 외쳤습니다. 왜 이 둘은 낙심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의 구원과 광야에서의 인도하심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였습니다. 두 사람은 눈앞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럴 때 문제는 그대로 있지만, 그 문제를 압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우리 모두 마음의 가드를 내리지 맙시다. 마음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내 대신 그 문제에게 결정적인 카운터 펀치를 날려 주실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골드코스트 사랑의교회</p>
<p style="text-align:justify;">고광덕 목사</p>
<p style="text-align:justify;"><br /></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Tue, 17 Feb 2026 16:50:01 +1100</dc:date>
	</item>
	<item>
	<title>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누가복음 5:4–11)</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599</link>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07356209492.jpg" src="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707356209492.jpg" alt="17707356209492.jpg" class="img-tag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한국의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김남윤 교수는 “하루 연습을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선생님이 알고, 사흘 안 하면 관객이 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단 하루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거장의 모습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 즉 갈릴리 호숫가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의 배를 빌리셔서 그 배 위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시몬은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물고기는 배 두 척에 가득 찰 만큼 풍성했습니다. 사실 물고기 잡는 일의 전문가는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갈릴리 호수에서 생계를 이어온 어부로, 언제 어디에 물고기가 많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하지만 그날따라 물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부인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부가 아니라 목수였습니다. 농기구를 만들고 나무를 다루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니, 베드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갈릴리 호수의 주요 어종인 틸라피아는 수온에 민감하여 밤에는 얕은 곳으로 올라오고, 해가 뜨면 깊은 곳으로 내려가 활동성이 떨어집니다. 당시 베드로가 사용한 투망은 깊은 곳까지 닿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은 전문가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지시였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럼에도 베드로는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상식, 경험, 성공 데이터까지 내려놓고, 물고기 잡는 일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겸손함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결과는 배 두 척이 가득 찰 만큼의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도 이 광경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상식과 경험을 절대화합니다. 물론 상식과 경험은 중요하고 때로는 지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잃는 인생 최대의 손실을 겪게 됩니다. “예수가 어떻게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그 부활을 제자들은 목격했고, 역사 속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고난 속에서도 기쁨과 소망으로 살아왔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믿음과 소망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교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겸손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겸손함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을 때 풍성한 기적을 경험한 것처럼 말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우리도 삶에서 종종 “이제는 불가능해”,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어”라고 말하곤 합니다. 실패의 경험, 깨어진 관계, 반복되는 좌절 때문에 더 이상 변화가 없을 것이라 단정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얕은 물가에만 그물을 던지는 것을 멈추고, 내 상식을 넘어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봅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겸손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릴 때, 주님은 우리의 실패를 사랑으로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골드코스트 사랑의교회</p>
<p style="text-align:justify;">고광덕 목사</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Wed, 11 Feb 2026 02:00:02 +1100</dc:date>
	</item>
	<item>
	<title>그분의 손을 꼭 잡고…</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598</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입니다. 한겨울, 성탄절이 가까운 어느 새벽이었습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시간에 교회에 가야 했는데, 집에서 교회까지 가려면 어두운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켜진 긴 골목길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문을 열고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골목 어귀에 있는 한 집 앞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 집이 두려웠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얼마 전 동네 누나 두 명이 연탄가스로 숨진 일이 있었고, 어린 제 눈에는 그 장면이 그 집 앞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집 대문 옆 화장실에는 빨간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화장실이 마당이나 대문 옆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밤이면 빨간불이나 파란불이 켜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늘 이런 무서운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도는 가운데, 그 집 앞을 지나 교회에 간다는 것은 어린 저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갈까? 말까?’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결국 교회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따뜻한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런데 바로 그 순간, 교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얘들아, 예수님은 우리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가신단다. 하나님은 다윗의 목자셨어. 그래서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그를 지켜 주셨단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 말씀을 떠올리며 저는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대문을 박차고 나가,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가고 계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 무서운 길을 지나 교회로 향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어린 날의 제가 참 기특하게 느껴집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벌써 2026년 1월이 지나고 2월이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새해의 꿈과 희망이 남아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계획은 흔들리고, 마음은 지치며, 내일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럼에도 우리가 소망을 품고 걸어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응원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하나님은 이사야서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이사야 40:31)</span></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우리가 하나님을 소망할 때 새 힘을 얻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미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말합니다. 전지전능이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 찬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속임수를 모두 아시고 정확하게 답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대답에는 거침도 주저함도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처럼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span></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우리는 지금 AI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엄청난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편리함이 커진 만큼 불안도 커지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구조는 빠르게 변하고, 전쟁에 대한 불안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손을 꼭 잡고 계십니다.</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예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고 계십니다.</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그래서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그래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span></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2026년 2월, 우리 마음의 신발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주님의 손을 꼭 잡고 그 길을 걸어갑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 길을 환히 밝히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span></p>
<p style="text-align:justify;">(시편 119편 105절)</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골드코스트 사랑의교회</p>
<p style="text-align:justify;">고광덕 목사</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Tue, 03 Feb 2026 12:00:02 +1100</dc:date>
	</item>
	<item>
	<title>2026 골드코스트 한인교회 협의회 신년 기도 (2)</title>
	<link>http://ozkoreapost.com/bbs/board.php?bo_table=column_christian&amp;wr_id=597</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6965502239.jpg" src="http://www.ozkoreapost.com/data/file/column_christian/176965502239.jpg" alt="176965502239.jpg" class="img-tag "/></p>
<p> </p>
<p style="text-align:justify;">2026년 새해의 새로운 시간을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골드코스트한인교회협의회는 골드코스트에 계시는 모든 교민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며</p>
<p style="text-align:justify;">응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span></p>
<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고린도후서 5:17-19)</span></p>]]></description>
	<dc:creator>오즈코리아</dc:creator>
		<dc:date>Thu, 29 Jan 2026 13:50:02 +11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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