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 놓음, 그리고 예배함
이러다간 2020년을 코로나 바이러스로 허비해 버릴 것 같습니다! 직장, 가정, 공동체, 관계 등 파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여서 예배하기 어렵습니다! 바이러스 전염 상황에 따라 대면 예배가 가능한 곳도 있고 비대면 예배만 가능한 곳도 있습니다. 언제쯤 모든 제한이 없이 예배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답답합니다. 예배하는 우리가 이런데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실까요?
코로나 팬데믹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의 왕관(Crown)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 것입니다. .
코로나(Corona)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코로네’로부터 왔고 왕관(Crown)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외부에 왕관처럼 생긴 전염 입자들이 둘러싸여 있어서 코로나로 이름이 정해졌다고 하죠.
십계명의 제 1계명은 “너는 나(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입니다. 하나님 만큼, 하나님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들은 모두 “다른 신들”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것들을 제자리(하나님 아래)로 돌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18-32에는 죄인인 사람들의 행태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것들과 바꿨고(23절),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과 바꿨으며(25절) 성 정체성도 바꿨습니다.(26절) 창조주 되신 하나님보다 지음 받은 피조물들을 더 예배하고 섬겼습니다.(25절) 재물, 성공, 명예, 지식, 욕심, 건강, 관계, 중독 등이 하나님 자리를 넘보고 있습니다.
불의, 악행, 탐욕, 악독, 시기, 살인, 다툼, 속임, 적의, 뒷담화,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 거만, 잘난 척, 악한 일 계획, 부모님께 불순종(권위를 부정), 양심 없음, 약속 지키지 않음(신뢰 불가), 불친절, 무자비가 이 시대의 모습이며(29-31절) 하나님의 법을 알지만 무시하고 악행을 계속하고 부추기기까지 합니다.(32절)
그런 사람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진노입니다.(18절, 2:3, 5, 8) “내버려 두심”입니다.(24, 26, 28절)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노아의 홍수 사건 직후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 노아를 통해 온 세상을 리셋하시고 다시 시작하셨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자, 우리의 성을 세우자. 그리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자. 그래서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창 11:4) 이 말을 현대식으로 바꾼다면 어떨까요? “열심히 일해서 집이라도 사야지! 더 큰 집으로 이사도 가고, 한 번 태어난 인생, 높이 올라 성공해야지!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가문도 일으켜야지!” 이런 현대인들의 소소한(?) 소망과 바벨 사람들과 큰 차이가 있나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언어를 뒤섞고 흩어 놓으셔서 사람들이 성을 쌓는 일을 그만두게 하셨습니다.(창 11:6-9)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왕관을 내려놓지 않은 우리를 향해 이제 그만 내려 놓으라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호세아 6:1 “가서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치셨으나 다시 낫게 해 주실 것이요,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해 주실 것이다.”
길어지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둘째, 거룩한 산 제사(Holy Living Sacrifice)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 “…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마땅히 드려야 할 영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바친 이 모든 제물을 바라지 않는다. … 피도 반갑지 않다.”(1:11),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너희가 태우는 향이 역겹다. … 축제일, 안식일, 특별 절기에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고, 거룩한 모임에 모여서 악한 짓을 하는 것도 견딜 수가 없다.”(1:13), “…그것들은 오히려 내게(하나님께)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나는 그것들을 짊어 지기에는, 너무 지쳤다.”(1:14) “너희가 팔을 벌려 내게 기도해도 나는 눈을 감고 너희를 쳐다보지 않겠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들어 주지 않겠다. 왜냐하면 너희 손이 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1:15)
코로나 이전처럼 예배 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점점 말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예배의 투사가 된 것처럼 말이 많은 사역자, 성도들이 있습니다. 한편 이번 기회를 통해 예배, 신앙 생활이 느슨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의 속마음을 정말 모르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예배 받는 대상입니까? 우리는 그저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를 조건 없이 은혜로 구원해 주신 주님 앞에 감격해,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예배 뿐인 사람들 아닙니까?
로마서 12:1에서는 예배에 대해 “거룩한 산 제사”라고 표현합니다. 제물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제사에 바쳐지기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 제물이죠. 그런데 본문에서는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제물이긴 한데 거룩하게 살아 있는 제물… 바울이 의도한 이 구절의 의미는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과 같은 심정으로 자아를 죽이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라는 뜻입니다. 예배당에 와서 예배만 하는 범위를 훨씬 더 넘어서는 삶의 예배를 말씀합니다.
사람마다 “거룩한 산 제사”의 해석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주어진 상황, 관계 가운데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주께서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예배의 모습입니다.
예를 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딴짓(?) 하지 않고 거룩하게 보내는 것이며, 자주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가족들에게 혈기 부리지 말고 예수님처럼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을 돌보는 것입니다.
빨리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관을 내려 놓지 않고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가도 주님 앞에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물리적 바이러스의 팬데믹이건, 영적 전쟁의 팬데믹이던 언젠가 또 몰려 올지 모릅니다. 주께서는 지금 이순간에도 침묵하시며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푸른파도교회 김도윤 목사 (0411 725 639)
호프신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