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교협 신앙컬럼

영적인 성숙을 위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자라가야 한다”

오즈코리아 0 10511

예수 믿고 정말 정말 행복하십니까?

혹시 구원에 대해서 확신은 있으십니까?

정말 지금 삶의 목적이 구원 받는 것인가요?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목적해야 하고 이루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자라가는 것과 영적인 성숙”입니다. 우리가 성도인 이상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 만큼은 꼭 우리에게서 이루어져야 하고 이루어 내어져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비유하기를 성도들이 어른이 되었음에도 단단한 음식은 먹지 못하고 오직 젖을 먹음과 같고 그리고 이것은 성도인 우리가 여전히 세상의 초등 학문에 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서신서를 통해서 말씀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자라가며 그로 인하여 영적인 성숙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 스스로에게 질문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자라가고 있으며 영적으로 성숙 한가?”


만일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자라가고 있으며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여기신다면 지금까지 해오셨던 것처럼 그렇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자신의 자만과 착각에서 기인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반면에 자신이 영적으로 미 성숙한 상태라고 생각을 하신다면 해답은 간단합니다. 지금까지 해오셨던 신앙생활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됩니다. 내가 지난 수년간, 어쩌면 십 수년 간을 지속해 온 나의 전부였던 신앙생활이 나의 영적인 성숙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이 잘못 방향 되었다는 것이 되고 최소한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신앙적 지식을 늘리고 선한 행위를 더욱 추구하는 삶을 살아 간다고 해서 결코 영적으로 성숙해 지지 않습니다. 그럼 매일 아침 산상수훈을 읽었고 묵상했던 힌두교인 “간디”는 구원을 받았어야 할까요? 성경을 달달 외우고 기도하는 시간을 아무리 많이 갖는다 해도 이것 역시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것들이 올바른 방법이었다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그 험한 책망”을 받을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지식적으로 박사이면 그리고 행위적으로 기부 천사쯤 된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에 충만한 것이라고 인정하시게 되던가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자란다는 것은 영적인 성숙을 의미 합니다. 영적인 성숙을 이루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랐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은 어떤 종교적인 행위로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여러분들의 삶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강도 만나 거반 죽어가던 사람을 열심히 간호하고 죽움에서 구해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대해서 대부분 알고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신앙생활은 이 비유의 말씀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난 후에 우리의 행동이 어떤 방향성을 취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젖만 사모하는 어리석은 바리새인들이 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영적인 성숙을 이룰 수가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은 대부분이 이쪽 방향이었을 것입니다. “그래 나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되자”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예배 생활하고 기도 생활하고 봉사 활동하고 선교 활동하고 구제 활동하는 일에 정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 왔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생활의 결과가 지금 여러분 스스로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만들었습니다.


혹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영생 곧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기독교인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배 생활하고 기도 생활하고 봉사 활동하고 선교 활동하고 구제 활동하는 등에 우리의 행위적 열심에 집중 되어진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 을 인정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 선택이 여러분을 깊은 영적인 성숙으로 인도함은 물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은 “강도 만나 거반 죽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만난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에 꽂혀서 그 역할만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 흉내만 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서 구원 받은 성도가 맡은 역할은 “강도 만나 거반 죽어 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강도 만난 사람 그것도 거의 죽은 상태에 이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오직 누군가의 은혜만이 필요 할 뿐이고 그것을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죽은 상태로 있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 구원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임하시는 것 만이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 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강도 만난 사람과 너무나도 똑같은 상황이 아닌가요? 


구원이든 영적 성숙이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시면 동시에 우리에게서 일어나게 됩니다. 다만 나는 죽은 자로 있는 것 뿐입니다. 영적인 성숙 죽은 자로 있는 것이지 어떤 열심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은 조건이 아니라 죽은 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반사로 나타나 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제발 어떠한 열심도 앞세우지 말기를 권면 합니다. 


여러분들이 열심을 내는 만큼 예수는 멀어 질것입니다. 다만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며 내 생각도 내 감정도 내 의지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라는 이 사실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죽은 자는 어떤 욕심도,욕망도 없으며 어떠한 죄의 유혹에도 빠 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감당 못 할 어떤 일이든지 생기면 그 때는 얼른 십자가로 달려가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베이스이며 이런 상태가 영적으로 성숙한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들 침례교회 

이영철 목사 0421 579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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