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교협 신앙컬럼

세상의 관점 vs 주님의 관점

오즈코리아 0 220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6, 쉬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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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이란 국립국어원 사전에 따르면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처지를 말합니다.  

위의 사진 같이 무인도에 오래 동안 홀로 갇혀 있던 사람은 한 사람만 탈 수 있는 작은 배가 나타나도 너무 반가워 “배가 나타났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작은 배를 타고 홀로 표류하던 사람은 한 사람만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는 섬이 나타나도 너무 반가워 “드디어 육지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장면을 모두 보고 있는 우리는 전체를 보는 관점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십니까? 어떤 관점으로 보십니까? 

세상의 관점으로 보십니까? 주님의 관점으로 보십니까? 


바울은 세상의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혼재되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고린도교회를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고전 13:2, 3),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고전 13:13)이라고 권면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회개를 통해 변화가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의 영향으로 바울의 가르침과 사도직 권위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과 사도직을 변호하기 위해 고린도후서 편지를 쓰게 됩니다. 

바울은 고후 5:11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셨으면 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들의 관점을 바꿔 달라는 말입니다. 바로 잡는 시간은 몇 년이 걸렸고 주님의 은혜로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정리되었습니다. 


조국을 생각하며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코로나19 대유행과 몇 번의 선거 기간 동안 참 많은 분열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대립은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도 해석과 주장이 너무 다르고 행동이 달라 답답하기만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되어야 할 설교단에서 조차 치우친 이념으로 포장되고 왜곡된 메시지가 남용되었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제 관점도 지적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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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첫 번째 사진처럼 ‘혼란스러운’ 사건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고(세 개? 아니면 네 개?), 두 번째 사진처럼 ‘명확한 사건’이지만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6일까? 9일까?)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까? 건전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부정적, 판단적, 비판적인 것은 아닐까요? 편견과 선입견과 악의로 상대방에 대해서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지는 않나요?


바울은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과거에 예수님에 대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었지만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고후 5:16) 바울과 같은 이러한 고백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닐까요? 예전엔 예수님까지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고,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다는 다짐과 선언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전권 대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고린도후서 5:20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관점을 버리고, 주님의 관점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한 자들에게(고후 5:18) 그리스도의 전권을 가진 대사인 우리에게 화해의 직책을 주셨습니다. 

화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카탈라게이’라고 하는데 화해라는 뜻과 교환(Exchang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과 세상이 필요한 것을 교환해주는 것이고,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조정(화해)해 주어 진짜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화해 사역’입니다. 좋은 소식(복음)을 전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의 관점을 갖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의 관점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넓은 품으로 포용하고 섬기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애를 쓰고 노력해도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개역개정)


세상의 불순물로 오염되어 있는 우리의 관점을 새롭게 할 때가 지금입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과점의 “하향평준화”가 뉴노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지금,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주님으로 인해 거듭나게 되었을 때 온전한 ‘카탈라게이’(화해)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 안에서 매일매일 창조적인 새로움을 누리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도윤 0411 725 639

푸른파도교회 목사

호프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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