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바라보는 지혜
어려운 시국을 보내시느라 여러분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참 수고로움이 많으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시절이 어수선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다 보니 오히려 이 어려운 시국으로 인하여서 누구나 예외 없이 하나님께 더욱 바짝 매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어려운 시국이 우리들의 영성을 이전 보다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무탈하고 평화로운 시기에 우리의 화려하고 풍성한 수많은 종교적 행위들이 우리의 영성을 오히려 방해하거나 더디 성장하게 하거나 복음을 왜곡시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이유는 각자의 삶의 배경에서 자신이 살아온 또 현실로 살아가는 그리고 미래에 살아가게 될 삶의 내용들을 통하여서 얼마나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대하여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의지하게 되고 소망 할 수 있게 되는가 이지 결코 우리가 어떻게 또 얼마나 우리의 행위의 선함과 그로 말미암은 자신의 착각적 의로움으로 잘 살아내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아마도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담입니다. 아담은 먼지요 곧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은 바로 자신이 아담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고 하는 것입니다. 고백하는 그 순간 그 때서야 비로서 신앙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돌아온 탕자 이야기로 알고 있는 성경의 말씀도 돌아온 둘째 아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 살다가 결국은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아버지 앞에 자신이 종의 한사람으로 곧 아담인 것으로 고백 되면서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종교적 행위를 바탕으로 한 열심에 너무 치중이 되어 있어 자신의 선함과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참 신앙의 허울을 뒤집어 쓴 기복적 자기 중심적 종교행위가 판을 치는 것에 대해서 통탄하고 애석하게도 나 자신도 겨우 그런 부류라는 사실에 치를 떨며 참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 앞에 아담일 뿐이라고 고백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들의 착각을 부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선택한 사람들의 삶에 개입을 합니다. “고난의 이름으로..,” 그 옛날 욥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 우리 모두에게 닥친 현재의 시국은 보편적으로 어렵고 힘든 점들이 많이 있겠지만 위의 관점에서 시국을 바라보게 된다면 아마도 조금은 하나님의 의도 하심을 알며 지혜를 깨닫게 되고 이겨내고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얻게 될 것이며 아마도 우리 모두는 자신들이 겪은 고난을 통하여 욥이 하나님께 비로서 고백 했던 것처럼 아마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42:5)
사도 바울은 서신서 갈 4:3,9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벗어 날 것을 권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 관점에서 해석 될 수도 있겠으나 이 말씀은 당시 성도들을 옥죄고 있었던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서 의로움을 삼는 율법적 신앙관과 우상 숭배의 목적이기도 한 세상적 잘됨을 그 뿌리로 둔 기복적 신앙관에 성도들이 머무는 것을 경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우리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를 것을 권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아버지여 아버지여 내 뜻 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이 마지막 고백처럼 주님께서도 그러했듯이 우리도 자신의 자기에 대한 자기 왕 노릇을 멈추고 자신의 모든 것 곧 자신의 생각, 감정, 의지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복종시켜 자신의 이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 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 이며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하심과 뜻대로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벗어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자신의 모든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여 내려놓은 비로서 성도가 된 자 곧 우리 자신을 통하여서 이루시고 완성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단코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이라는 은혜에 감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종교적 행위들은 이런 내적 성숙이 이루어짐으로 자연스레 그 결과물들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삶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것이며 우리 행위로 인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서 받게 되시는 것이 마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이 여러분들께서 묵상할 때에 좋은 동기와 소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골드코스트 우리들 침례교회
이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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