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간을 함부로 하지 않고
혹시 김광석이란 가수를 아십니까? 저는 예전에 덕수궁 영국대사관 근처에 있던 마당세실이라는 소극장에서 그의 공연을 본적이 있습니다. 비록 TV를 통해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소극장 연주를 통해서 꽤 많은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통기타 가수였지요. 그가 1000회 공연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라이브 공연 천회를 달성한 그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김광석은 기성 조지훈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기려고 바둑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한돌한돌 놓다 보니 기성도 되데요라고 말한 조지훈씨처럼 처음부터 천회공연이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노래하다 보니 이렇게 되데요…”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대단한 일이란 정성을 다한 작은 일들의 무수한 반복에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도 복음적인 이치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금이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 역시 이렇게 자라나갔습니다. 저는 작은 일속에 담긴 위대한 일의 논리를 기독교 선교역사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지도에 보시는 것처럼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이 저 작은 팔레스타인지역에 국한되어 발생했는데 이것이 밖으로 나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까지 퍼져 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 중 하나는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모습은 패턴이 있습니다. 단순화 하자면 [전도-논쟁-박해-열매-도피]등의 도식이 적용됩니다. 비록 그의 동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장되었다고는 하나, 시작이 거부와 도피로 끝이 나는 결과를 되풀이 한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고 아픈 일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사이비라고 비방 받고, 이방인들에게는 선동가라고 비방을 받았습니다.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된 사람들조차도 위협을 받았습니다. 어지간히 강한 사람이 아니고 선,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길을 그는 한발한발 걸어 나갔습니다. 그는 그 길을 걷기 위해 동료와 협력하였고, 또한 결별하기도 했습니다. 또 비장한 각오를 하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삭발했다는 기사도 등장합니다. ‘로마까지 언제갈까?’라는 마음이 아니라, 하루하루 새로운 걸음을 걸었습니다. 새로운 전도, 새로운 박해, 새로운 열매, 새로운 도피… 저는 사도바울의 강성의 비법을 빌립보서 3:13에서 찾고 싶습니다.
…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것은 방관하거나 걱정하거나 미루는 것이 아니라, 몸을 내미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틈한틈, 하루하루 지나면 어느새 삶도 내게 심겨주신 복음도 자라있는 것입니다.
골드코스트비전장로교회윤명훈목사
0423 932 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