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해 삶을 바꾸세요
행복을 위해 삶을 바꾸세요.
베드로전서1:3-6
생사의 기로에서 적을 죽여야만 하는 군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내가 내일 살아있을까? 나는 일상의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죽음의 사선을 뛰어넘어.. 행복을 원하는 내 소망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라고 합니다.
비단 이러한 소망은 전쟁터에 있는 군인들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총과 무기를 들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삶은 안 보이는 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관계적인 전쟁, 건강의 전쟁, 먹고 사는 문제의 전쟁 등 치루어야 할 전쟁들이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와의 전쟁.. 제법 치열한 전쟁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약1950 여 년 전에 그 어떤 전쟁보다도 치열한 전쟁터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너무나도 감사해서 온갖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믿음의 선배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어려움을 맞이한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통해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소아시아는 지금의 터키 쪽을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아주 명확한 말을 사용하여 저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3절에 나오는데 바로 a living hope,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베드로는 이 산 소망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부활하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산 소망인데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소망입니다.(3,4절)
세상의 모든 종교들 그리고 사상이 왜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가벼울까요? 왜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이 헛된 것일까요?
그것은 부활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방부제를 사용해 미이라를 만들고 어느 때에 다시 살아나길 소망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헛된 소망일 뿐입니다.
동양적인 종교들은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동물과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윤회하는 것 역시 부질없는 헛된 소망입니다.
또 부분적으로 부활을 이야기하는 종교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부질없는 헛된 소망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러한 것들은 그 객관적인 증거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온갖 변신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서유기의 손오공의 이야기나 수많은 주술적인 능력이 나오는 신화들처럼 뜬끔없이 우연히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분들은 말합니다. “예수의 부활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부활도 신화가 아닌가? 제자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 아닌가? 아니면 의미만 전달하려고 하는 가르침 아닌가?”
결코 아닙니다! 부활은 그 증거가 분명히 있습니다.
말씀의 진실성과 삶의 진실성이 일치하셨던 예수님.. 다시 말해서 완전한 인격을 가지고 계셨고 그렇게 삶을 사셨던 예수님은 요한복음11:25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야이로의 딸도 살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고 죽은 뒤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예고를 믿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미 여러 사람들을 살리시면서 당신의 부활을 교육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다 도망치고 맙니다. 부활을 교육받은 제자들이 이렇게 도망을 친 것은 그만큼 죽음이 무서운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500여명의 사람들이 봤습니다. 동생 야고보도 봤습니다. 전에 심한 핍박자였던 바울도 보았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부활은 확실한 증거, 증인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부활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산 소망이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은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변질되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남녀들과 친구들도 여러 이해관계나 돈 문제에 얽혀서 서로 등지고 헤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게도 정의를 외치며 살았던 사람들이 변절자가 되어서 민족을 팔아먹고 정말 추한 모습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몸 역시 노화되고 결국 땅에 묻혀 썩고 맙니다. 또 세상의 강대국들이 그렇게 강한 것 같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부활의 산 소망이 필요합니다. 현대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허하고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 없는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지만 죽음과도 같은 마음의 문제는 그 편리함으로 대치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높은 자살률과 마약을 비롯한 중독의 문제 등은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행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삶을 바꾸어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그 살아있는 소망의 자리로 옮겨 보십시오.
이를 위해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 하나님, 제가 소망했던 돈, 건강, 명예, 나를 외롭게 하지 않을 친구 등 많은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것임을 이미 하나님은 다른 이들의 죽음을 통해 제게 보여주셨건만 나는 어리석게도 저들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잠시 잠깐 내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지만 역시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죽음 이후에도 생명의 풍성함을 가져다 주는 진정한 소망, 진정한 행복을 저에게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살아있는 소망을 제가 소유하게 해 주세요.”
이 기도를 하게 된다면 당신은 바로 거기에서 산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손의 터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골드코스트 사랑의교회
고광덕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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