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교협 신앙컬럼

지루함

오즈코리아 0 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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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영성가운데 저희는 지난 주, “두미야, 여호와를 잠잠히 기다리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하려 합니다. 사실상 ‘하나님께 맡긴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실 것이다’등등의 표현에 우리가 익숙해 있지만, 때로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모호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말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오늘의 시편40편을 보면 이 시인은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는 같은 단어를 중복해서 강조를 표현하는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정말 하나님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강조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린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풀어주실 것을 기다린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일이 풀어지는 것’과 주어인 ‘하나님’을 혼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린 자는 하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시편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 37:7)라는 시편의 내용처럼, 앞길이 잘 풀려 형통하며 비록 불의하더라도 방법을 고안하고 그것을 이루어 내는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73편18절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형통을 ‘미끄러운 곳에 두신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교만과 거짓을 이겨내야하는 싸움입니다.(시 40:4)언제까지 인지도 기약되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에 거짓과 교만의 형통은 우리를 허무는 강력한 유혹입니다. 


조병화 시인의 ‘지루함’이라는 시는 인생에서 기다림과 지루함을 피할 수 없지만, 그 막연한 기간에 ‘생생히 살아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있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서 기다린 것인데, 잘못된 손짓에 내 기다림을 허망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기다림의 시간동안 ‘깨어있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루함의 시간속에서 깨어 있는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변해버리고 말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조병하 시인의 말처럼 생생히 살아있지 못했다는 증표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내 자신이 이 지루함 속에서 세상처럼 변해가지 않도록 우리 하나님을 기다립시다. 


골드코스트 비전장로교회

윤명훈 목사 0423 932 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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