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으로 확증 편향되기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영국의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Peter Wason)이 만든 용어로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지만, 자신의 견해를 반박하는 증거는 찾으려 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향성”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입니다.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 “2024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 심리 현상”)
이 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확증 편향에 빠지는 이유는? 첫째, 수많은 정보를 모두 처리할 수 없는 한계로 인해 빠른 취사 선택과 결정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이 옳다고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확증 편향은 자동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훈련 받은 전문가들조차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확증 편향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첫째, 의사 결정 과정에서 확증 편향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 둘째, 열린 마음으로 상반된 정보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제시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르는 당신은 어떻습니까? 확증 편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떤 확증 편향이 있습니까? 개인 또는 공동체에 대해 불완전한 확증 편향이 있지 않습니까? 확증 편향이 되지 않을 만큼 당신은 의식하고 열려 있습니까? 보고 듣고 계십니까? 성경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십니까? 혹시 성경 말씀을 내 뜻에 따라 이용하거나 왜곡하여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지는 않으신가요?
미디어, 인터넷, SNS, OTT, 유튜브, 쇼츠, AI 등으로 인해 세상은 더 빠르게 개인화 되고 확증 편향화되고 있습니다. 우연히 어떤 동영상을 보면 그 후론 자동 알고리즘에 의해 계속 그런 종류의 동영상이 추천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확증 편향화가 유도되는 것이죠.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 만으로도 24시간, 365일을 채울 수 있습니다. 정치의 양극화와 확증 편향화도 이성과 도덕, 신앙의 벽을 뛰어 넘고 있습니다. 사고, 참사, 전쟁 등 존귀한 인간의 생명과 죽음도 확증 편향화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는 옳고 그들은 옳지 않아!’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증오, 파괴하려는 정도까지 와 있습니다.
13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더 악해져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입니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디모데후서 3:13-14)
불완전하고 연약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입맛에 맞게 선택하고, 왜곡하고, 기억하여 잘못된 신념을 갖고 살기 쉽습니다. 의롭고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용납하고, 포용하고, 사랑하고, 거룩해야 할 성도, 교회, 신앙 공동체가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부인함으로(딤후 3:5) 힘과 빛을 잃었고, 성도들은 차지도, 덮지도 않은, 소금의 맛을 잃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유언과도 같은 본문이 기록되었던 20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악한 자들은 속고 속이는, 확증 편향을 생산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13절) 하지만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믿는 자들의 무리들인 ‘성도’는 확증 편향의 늪에 빠지지 말고 그 대신 태초부터 영원까지 변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성경 말씀(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14절) 그 어느 때보다 Back to the Basic, Back to the Bible해야 합니다.
저는 “동성애는 죄!”라고 평생 가르침을 받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목사로 호주에서 와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던 중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을 지원하는 NGO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자원 봉사자들과 친해졌는데 그 중 한 여성 자원 봉사자는 아들이 경찰관이라고 자랑스러워 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스퍼거를 갖고 있는 10대 남학생이 립스틱으로 화장하면서 직원과 자원 봉사자들에게도 칠해주면서 저에게도 칠하려고 하던 순간 저는 즉각적으로 “No, I’m not gay”라고 거부하였습니다. 그 순간 경찰관 어머니 자원 봉사자가 “What’s wrong with being gay? 게이가 어때서?” 라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게이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자신은 아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럽다고 여러 말씀을 쏟아 내셨습니다.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고 언어의 한계도 있었기에 어떻게 대화를 마무리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돌이켜 보니 제 안에 평생에 걸쳐 ‘남자는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 ‘남자가 립스틱을 바르면 그건 동성애자야’, ‘동성애는 죄야’, ‘그러니까 립스틱을 바르면 죄야’라는 어이 없는 확증 편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하고, 만나게 하고, 신앙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섬긴다고 서약했던 내가 얼마나 편협했던가 많은 반성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생각과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졌고 지금도 확증 편향적, 극단적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혼탁해지는 현실 속에서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으로만 확증 편향되면 어떨까요?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고,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던 바울처럼 살면 어떨까요? (빌 3:8-9)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시는 주님으로만 가득하다면 우리의 하루는 어떨까요? 평안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사랑과 은혜, 섬김, 헌신, 희생의 삶을 살면서도 불의와 부정, 거짓, 폭력, 억압에 맞서는 마땅히 가져야 할 균형 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삶에 예수 확증 편향으로 거룩의 변화가 일어나길 기도드립니다.
김도윤
푸른파도교회 목사
Hope College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