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먹는 아파트'… 80대 노부부의 안타까운 사연
멜번에서 ‘가연성 외벽자재 또는 클래딩(flammable cladding)’ 제거 공사가 이미 완료된 건물에 추가로 내려지는 시설보강 조치로 정신적, 재무적 고통을 겪고 있는 80대 노부부의 사연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채널 9 뉴스와 유력지 디 에이지 보도에 따르면 멜번의 부촌 사우스야라 윌리엄스로드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교사 출신인 케빈 및 제니퍼 오피 부부는 지난 2019년 가연성 클래딩 제거 비용으로 무려 9만2천달러를 납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고지서에 따르면 3개월 이내에 비용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2만달러 이상의 벌금이 부과되고 아파트에서 퇴거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포함됐다.
오피 부부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이어 다니엘 앤드류스 빅토리아 주총리가 총 6억달러를 투입해 클래딩 제거 비용을 주정부가 부담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빅토리아주의 건설업 관련 감독기관인 건축협회(Victorian Building Authority, VBA)는 이후 이 아파트에 대해 무려 30건 이상의 화재 안전 결함을 지적했고, 소유주들이 비용을 공동부담해 시정하라고 통보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11년 완공 당시 주거용도 허가(Occupancy Certificate)를 받은 건물이었다.
오피 부부는 클래딩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VBA가 다른 문제점들을 들고 나왔고, 그 중 일부는 10만불 가까운 비용이 소요되는 공사였다고 말했다. 총 18채로 구성된 이 아파트 소유주들은 은행으로부터 50만달러를 대출받아 공사비로 충당했고, 아파트 전체를 관리하는 경비가 4배가 폭등한 가운데 아파트 시세는 곤두박질쳤다.
최근 VBA는 이번에는 아파트 전체에 스프링클러 시설을 설치하라고 통보했다. 그 비용만 해도 20만달러로 예상된다. 빅토리아주 소방구조국(Fire Rescue Victoria)은 이 아파트에 대한 보고서에서 스프링클러 시스템 설치를 권고한다고만 언급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VBA 조치에 대한 대안을 담은 280페이지 분량의 엔지니어 의견서를 첨부해 건축규정 항소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이는 불과 몇 주 뒤 기각됐다. 일부 수정된 내용을 보완해 또 다른 의견서를 제출했으나 이 역시 기각됐다.
제니퍼는 채널 9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감을 잃게 됐다. 이번엔 또 무슨 문제가 생길지 걱정하느라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케빈도 "상황이 너무도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재무적으로 고갈 상태가 됐다"며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기를 대비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의도했던 모든 계획이 망가져버렸다"고 말했다.
얼마전 큰 허리 수술을 받은 제니퍼와 무릎 관절염을 앓고 있는 88세의 케빈 오피 부부는 요양병원 입주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 이 바람은 지금으로선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부부에 따르면 VBA는 이들에게 하자보수 분담금 마련을 위해 은행 대출을 알아볼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80대 노부부가 그 정도 금액을 대출받는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지만 설령 대출을 받는다 할지라도 상환할 능력이 있을지 여부 또한 회의적이다.
[출처 : 한호일보-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