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
여호수아1:7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가운데 조선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좀 더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시대도 그러했지만 특히 조선시대는 당파싸움으로 인해 국력이 더욱 쇠퇴하였습니다. 한국역사학자 가운데에는 당파싸움을 민주적 정치형태인 ‘붕당’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붕당은 여러 사회 문제들을 학문을 바탕으로 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당파싸움의 긍정성을 이야기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붕당의 정신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고 학문, 가문,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다툼으로 인해 나라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빠졌고 그 다툼으로 인한 국력 쇠퇴로 인해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이 일어나게 되어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나라는 황폐해졌습니다. 결국 조선말기에는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는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당파싸움의 연속선상에 우리 모국인 대한민국이 여전히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정치적인 갈등과 대립은 심각한 편입니다. 당들은 무조건 다른 당에서 한 것은 잘못하는 것이라고 비판을 합니다. 예전에 소위 보수진영이 집권할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으로 인한 광우병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 때 진보 진영에서는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것으로 인해 광우병에 걸렸다고 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요즈음 대한민국은 진보진영에 속한 당이 정권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상황 속에서 비교적 대처를 잘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호주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봉쇄로 코로나에 잘 대처하고 있다면 한국은 국경을 봉쇄하지 않고 선방하고 있는 편입니다. 물론 몇 백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지만 국경을 오픈하고 이렇게 잘 한다는 것은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금번 G7 정상회의에서 영국, 미국 등의 지도자들이 대한민국 지도자를 향한 반응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저들의 Role Model은 아무래도 호주의 방식이 아니라 한국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코로나를 잘 대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에서는 여전히 비판만을 하고 있습니다. 잘하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코로나 상황에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은 정부만 잘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전에 보수진영의 정권 시절에 메르스 등의 사태로 어려웠을 때 그것을 교훈 삼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메뉴얼을 나름 잘 만들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코로나의 최전선에 있는 보건당국자들과 의사, 간호사 분들은 대부분 과거 보수 정권 당시에 열심히 수고 했던 분들입니다. 이 분 들은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이들의 수고와 헌신, 경험, 기술이 현 정부의 수고보다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다른 당이 집권하니까 못한다고 깎아내리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소위 보수진영이나 진보진영이나 모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Balance’ 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한 사람을 보여줍니다.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지도자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자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막중한 사명을 가진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중요한 충고를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Balance를 잘 유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모세가 네게 준 율법에서 돌이켜 좌우로 치우쳐서는 절대 안 된다.” 사실, 여호수아는 약200만명 전후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두려움을 아시고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서 돌이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그 ‘균형’은 그저 중간에서 가만히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균형’은 그저 위치적인 중간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균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의 Balance, 그 균형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약의 개념에서는 ‘순종’ 인데 이것은 신약의 예수님을 관통하여 해석해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올바르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균형이 깨어진 사랑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균형이 깨어진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22:37-39) 그러므로 진정한 균형은 하나님사랑, 이웃 사랑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3장4절 이후에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사랑이란 오래 참고 친절한 것이라고 그 정의를 출발시킵니다(Love is patient, love is kind.) 인내하며 친절한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정의 중 그 시작 부분에 있는 이 몇 가지 만이라도 잘 적용하면 Balance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치, 가정, 사회, 남녀의 문제, 건강, 교회 등 모든 것의 문제는 바로 Balance를 잃어버렸을 때 일어나는데 사랑과 함께 하는 그 균형을 갖게 되면 반드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균형’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 삶이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 또 승리하기 위해서 ‘균형’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지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가 우리에게 두 눈, 두 귀, 두 손, 두 발을 주신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균형을 갖는 삶을 지향하라고 우리 몸의 여러 부분을 두 개 주신 것이 아닐까요? 거기에는 분명한 창조주의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골드코스트 사랑의교회
고광덕 담임목사
0451 472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