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교협 신앙컬럼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안배, ‘바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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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 마음을 돌이키고, 감정을 돌이키고, 몸도 돌이키는 일련의 과정은 사도 바울에게 결코 순간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나 판단과 같은 내면적인 혼란 뿐만 아니라, 관계적인 혼란에 직면했습니다. 즉 그는 세상에서 분류가 안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전에 종교적인 열심을 함께 품었던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모든 성문을 지키고”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심지어 광주리에 몸을 숨기고 빠져나오기까지 했습니다. (9장25절) 그렇다고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그를 환영한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9장26절)


다시 말해 회심에 따른 새로운 영적인 신분증을 가지고 삶을 살아야 하는데 발급이 안되는 것입니다.  즉 미분류 화일의 인생이 되는 것이죠. 이 때, 바울의 인생에 바나바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울 자신의 입으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지만, 그 이야기를  바나바가 교회의 수장이었던 사도들에게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무슨 음성을 들었으며 그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누구를 소개해주는 정도의 별 어렵지 않은 수고 같은데 이 작은 배려의 손길이 선교역사의 여명을 밝히는 하나님의 신비한 안배였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바나바는 그의 사역의 현장에 바울을 동역자로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인지도에 있어서나, 경험과 신망에 있어서 바나바는 당연히 바울의 선임자격입니다. 그런데 루스드라지방 사역을 할 때, 그 곳사람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 바나바를 제우스로 바울을 헤르메스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바나바가 바울에게 ‘뜻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주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선포의 자리에 바울을 자신보다 앞세워줬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울의 마음을 회심하게 하신 후, 만남을 안배하셨습니다. 바나바와의 만남은 주님이 바울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만남은 순수하고 맑았습니다. 대개의 경우, 남의 삶을 자신의 편견이나 기호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심이나 사정은 생선 토막내 듯 잘라내고 말입니다. 혹은 설령 진심과 사정을 배려하며 다른 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경우도에도 자신의 호의에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경향도 많이 있습니다.  비록 호의이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앞서가면 금방 불편한 기색이 나타나죠.  그러나 바나바에겐 이런 흔적이 없습니다. 이미 사심을 갖는 호의의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충일한 만족”이 그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가 바울과 같은 선교의 역사를 꿈꾸기 전에, 한 사람을 두려움 없이, 편견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만날 수 있는 바나바가 주께로부터 얻은 영혼이 더 꿈꾸었으면 합니다.

골드코스트비전장로교회윤명훈목사

0423 932 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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