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교훈을 주의하십시오
표제어 외식적인 복음, 부의 복음, 현세적인 복음을 조심하십시오.
본문 마16:1-12
제목 거짓 교훈을 주의하십시오.
1. 공격하는 사람들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전통이나 인간적 관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수님께 끊임없이 사람들을 보내서 예수님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공격하고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에 대해서 딴지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의 공격과 논쟁을 피해서 두로와 시돈, 그리고 데가볼리 등 이방인들의 땅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2. 적과의 동침
이번에도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는데 평상시에는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함께 왔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태생 자체가 사두개인들에 반대해서 일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신흥부흥운동가들입니다. 전통적인 해석대로 율법 준수에 목숨을 건 사람들입니다. 배타적 선민주의에 흠뻑 빠져서 다른 사람들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극단적인 우월주의자들이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 하나님 나라의 도래, 천사와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고 메시야를 대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사독 계열의 부유한 제사장들로 모세 오경을 제외한 모든 성경과 하나님의 예정을 부인하고, 천사, 영. 사단의 실체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성전주의자들로, 주로 부자들이었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함으로써 철저하게 현실 지상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들은 신앙적인 관점과 교리가 너무나 달라서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공격하는데 연합전선을 편 것입니다. 일종의 적과의 동침인 셈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음해라고 모함하기 위해서 연합전선을 펴고 나온 것입니다.
3.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이들이 표면적으로 들고 나온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랍비들은 귀신들도 땅에서 행하는 각종 이적을 행할 수 있지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은 하나님만 행하실 수 있는 일들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귀신을 내어 쫓고, 병자를 치유하며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과 표적과 능력을 행하신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요구는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던 동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설사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시더라도 그들은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했다고 말하면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에게 날씨는 분별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줄 모른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저녁 하늘이 붉으면 다음날 아침 날씨가 좋고, 아침 하늘이 붉고 흐리면 그 날은 궂은 날이 되는 것은 온대지방 기후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하늘에 나타나는 자연적인 여러 현상들은 분별할 줄 알면서도 하늘로서 온 참 표적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의 표적을 식별하지 못하고 하늘의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로 규정하고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삼일 만에 살아 나온 것을 말합니다.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은 요나처럼 예수님께서 죽어 장사되었다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밖에 보여 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음란한 세대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종교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하늘의 표적을 요구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는 죽음과 부활의 표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4. 거짓 교훈을 주의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마가단 지방에서 벳새다지방으로 추정되는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는 중에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룩은 원래 빵을 만들 때, 밀가루를 발효시키는 이스트(yeast)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맥에서 누룩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의 전염성과 악한 역향력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주로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추구하는 가식적인 형식주의를 말합니다. 반대로 사두개인의 누룩은 모세 오경 외의 성경을 부인하고 세속적인 삶에 만족하며, 쾌락을 추구하는 현실주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인 이 두 분파 사람들의 가르침의 파급효과는 매우 지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점에 대해서 특히 제자들에게 환기를 시키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 외식적인 복음, 부의 복음, 현세적인 복음을 조심하라는 말은 그들의 가르침에 물들거나 배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귀족적인 기독교의 위험은 이 땅 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더 나은 영원한 본향을 향한 갈급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 너무 편해지려는 기독교, 너무 쉽게 주님을 따르려는 기독교는 분명 주님과 상관이 없는 기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는 교회와 성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전한 교회와 신실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골드코스트 온누리교회
양병구 담임목사 0412 341 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