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날을 세는 법
새해 하나님이 자녀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오늘 시편 90편의 말씀으로 여러분과 신년의 메시지를 나누려합니다. 제목은 [우리 날을 세는 법]입니다. 시편 90편1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주십시오.”라고 간구합니다. 눈여겨 보신다면, 지혜를 구하여 그 지혜로 날을 세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날을 셀 줄 아는 것에서 지혜가 나온다는 시인의 생각을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시인에게 지혜의 원천은 내가 살아가는 날을 세는 법에서 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내가 앞으로 며칠 더 산다는 수학적 계산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만이 아시는 우리 날수를 히스기야왕 같은 사람에게는 말씀해 주셨지만, 좀처럼 먼저 알려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럼 “날을 세는 법”이라는 것이 정확한 내 나이를 알며 산다는 것이겠습니까? 요즘들어 나이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한국나이 호주나이 그러다 어름잡아 사십대 초반, 중반, 후반으로 계산합니다. 그런데 내 나이 몇 살이라는 것을 아는 데서 무슨 지혜가 나오겠습니까? 종종 몇년도 몇월 몇 일까지 자신의 일대기를 기억하시는 분들을 보면 경외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 기억력이 지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지금 시편에서 말하는 “날을 세는 법”은 보다 특별한 문맥을 가지고 있습니다. 12절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하는 인간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처지입니다. 저희 고국에 있는 집이 산에 있습니다. 사람도 바뀌고 길도 생기지만, 그 산은 그대로 입니다. 매일 아침 같은 산을 보고 멀리 여행을 갔다와도 이 놈은 그대로 거기 있습니다. 내가 무슨일을 해도 산은 거기에 있습니다. 심지어 거기서 태어난 사람이 늙어 죽어 그 산에 묻히 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산이 생기기 전부터 계셨던 분입니다(2절) 또한 천년이 저녁한 때와 같은 분이십니다(4절) 일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아브라함 당대가 아닌 400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400년을 내일 일처럼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반면 우리에게는 떄로 너무 길고 지루해 보이는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는 잠깐의 꿈같은 것이며 아침에 돋아나 저녁때 시드는 풀잎같습니다(5절) 비단 시간의 길이 뿐아니라, 능력에 있어서도 하나님앞에서의 인간의 처지는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을 인생들아, 돌아가거라”라고 말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그 분이 노하시면 우리는 사라집니다(7절) 또한 우리는 그분이 못보도록 벽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 없는 데서 저질러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는 앞에서 저질러 집니다. 하나님 앞에선 모두가 현장범입니다.
칠팔십평생이 눈깜짝할 사이 지나간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10절에 나옵니다만, 시편의 말씀은 세월이 저 혼자 참 빠르게 흐른다는 뜻보다는 하나님의 존재와 대비되어 한 숨같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을 세는 법”이란 하나님의 존재앞에서 내 처지를 보며 내게 찾아오는 세월의 의미를 바로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산을 그 자리에 두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인생의 질서를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나를 티끌로 돌려버리실 수 있는 분이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시편이 말하는 자신의 날을 바로 계산하는 법을 놓치면 시편73편에서와 같은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사는 인간이 망하지도 않고 너무 잘 됩니다. 신세가 너무 좋습니다. 그 사람을 보도 백성들도 “하나님이라도 다 알수 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악인이며 죄인인 인간이 세상을 자기것 같이 여기며 너무도 당당한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저게 사는 맛이지’하며 부러워합니다. 심지어 믿음을 지키며 살려고 하는 시인도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그 죄인도, 하나님도 알지못한다고 말하는 속세인도, 그 신세를 부러워하며 시험에 빠지는 의인도 모두 자신의 날을 세는 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천종호라는 청소년범죄 재판관이 있습니다. 그분은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입니다. 비행청소년들이 그분 앞에 와 재판을 받습니다. 그 자리에는 학교 교사, 피의자, 피의자의 부모들이 함께 있기도 합니다. 헤어드라이기로 온 몸을 묶어 바다에 빠트린다고 위협혔던 일진, 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돈을 상납하지 않는다고 때리고 112회에 걸쳐 1400만원을 갈취한 불량학생들이 모두 그 판사의 말 앞에서 울며 일어나 손을 빕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그때 그 판사는 “안돼. 안바꿔줘. 돌아가”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 가운데 천종호 판사가 일곱번 돈을 갈취하고, 그 친구에 들어가 샤워하고, 후드셔츠까지 빼앗아 입고 , 밤11시에 찾아가 우유통에 돈 넣어놓으라고 말한 일진 여학생에게 하는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이 여학생에게 “그 아이를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괴롭힐 때 이렇게 될 줄 몰랐어?”라고 호통칩니다. 저에게는 그 법정이 마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모습처럼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자기 멋과 고집에 살아가며 교만을 떨지만 하나님앞에 설 자신을 망각한 것이죠. 말씀으로, 양심으로, 고난으로 그것을 알려주시는데도 한눈팔며 살다, 하나님 앞에서 서면 자신이 모아놓았던 멋들은 추잡하기 짝이없고, 일어나 손을 빌던, 무릎 꿇고 빌던, ‘잘못했습니다’라고 우는 것이죠.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될 줄 몰랐어?”라고 말하실 것 같습니다 . 하나님이 주신 2024년 하나님 앞에서 우리 날을 잘 계산하며 삽시다! 그게 지혜입니다.
골드코스트 비전장로교회
윤명훈 목사 0423 932 742